첫 토플 후기
7월 3일에 토플을 처음 응시해 보았다. 80점을 목표로 했는데 점수는 목표를 뛰어넘다 못해 예상보다 훨씬 잘 나왔다. 진짜 상상도 못한 점수가 나왔다.
갑작스럽게 결정하게 된 거라 준비 기간은 딱 일주일이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토플을 보게 된 배경과 후기, 팁, 일주일동안 공부한 방식 등을 써 보려고 한다.
토플을 왜 보기로 했냐면 미국 교환학생 때문이었다. 교환학생 갈 생각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사실 치안이나 환경 때문에 영 내키지가 않았다. 내가 원하는 곳은 일본이었고, JLPT N1을 땄으니 토플은 칠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CS를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학문을 하려면 미국이 정답인건 너무나 당연한 거지만, 대학원 유학도 아니고 짧게 교환학생으로서 가는 미국은 그다지 메리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왕 교환학생을 가려면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내가 일본을 좋아하기도 하고…
근데 왜 미국 학교 쓰려고 토플을 응시했냐? 아빠 때문이었다… 교환학생 가려면 돈이 들고, 나는 모아둔 돈이 없었으니 부모님한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고집을 부릴 수는 없는 것이다. 엄마는 내가 일본에 가는 것도 좋게 받아들여 주셨지만, 아빠는 미국을 원하셨다. 결국 내가 미국에 가길 원하는 아빠의 뜻에 따라 토플을 쳤다.
응시료 할인 바우처
토플은 응시료가 220달러, 한화로 거의 30만원에 달하는 비싼 시험이다. 내가 태어나서 쳐본 시험 중 가장 응시료가 비싸다. 이것도 약간 깎을 수 있는 팁이 있는데, 인터넷에 뿌려져 있는 바우처 코드를 활용하는 것이다. 결제할 때 바우처 코드를 입력하면 10~20달러 정도 할인이 된다. 포켓몬에서 수상한 소포 받는 것처럼 기간 내에 여러 명이 쓸 수 있는 코드가 많아서 쉽게 구할 수 있다. 덕분에 나는 운 좋게 20달러 할인을 받았다.
나는 이 사이트에서 코드를 구했다. 지속적으로 업데이트가 되고 있으니, 위에서부터 하나씩 넣어 보면 되는 게 무조건 하나 이상 있을 것이다. 여기서 안 되면 toefl voucher 같은 키워드로 구글링해도 많이 나오니까 잘 찾아 보자.
Home Edition은 거를 것
토플을 치르는 방식은 3가지가 있다. 평범하게 시험장까지 가서 치는 방식이 있고, 코로나 때 새로 생겼다고 하는 Paper Edition, Home Edition이 있다. Paper Edition은 Speaking 영역만 집에서 응시하고 나머지 영역은 시험장에서 치르는 방식이다. Home Edition은 모든 영역을 집에서 보는 방식이다. 근데 난 이상하게도 시험 접수할 때 Paper Edition이 선택지에 없었고 Home Edition과 시험장에서 보는 방식(이름까먹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나는 집이 아닌 시험장이라고 딱히 긴장을 더 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선택지가 있다면 집에서 시험 보는 게 그나마 편할 것 같아서 Home Edition을 골랐다.
Home Edition 응시자로서 결론부터 얘기하면 Home Edition은 매우 비추이며 웬만하면 시험장에서 치는 걸 권장한다. 집에서 보는 편안함 하나를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불편함과 리스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사실 이 단점들 때문에 집에서 보는게 딱히 편안하지도 않다. 알고 보면 단점밖에 없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시험 시각에 메일로 온 링크를 통해 시험 페이지에 접속하고 시험 프로그램을 실행하면 감독관이랑 1:1챗으로 연결이 되는데, 여기서부터 문제다. 감독관이랑 연결이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뒤에 언급할 프로그램 문제 때문에 1회 재접속을 했는데 처음 접속할 때는 바로 연결이 됐지만 두 번째에는 15분 정도 기다렸다. 연결이 되고 나면 채팅을 하거나 감독관이 전화를 걸어와서 영어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낮에 시험을 치는 경우 높은 확률로 인도인 감독관이랑 연결돼서 인도식 영어 발음을 들을 수 있다.
그리고 집이 부정 행위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다 보니 시험 환경을 매우 깐깐하게 검사한다. 시험을 치려면 웹캠을 돌리거나 폰카, 거울을 이용해서 시험을 치는 방의 전후좌우를 순서대로 보여주고 감독관에게 OK를 받아야 한다. 이때 벽에 뭔가 붙어있거나 감독관이 보기에 거슬리는 물건이 있으면 안 된다. 그리고 책상도 필기도구를 제외하고 비워져 있어야 하는데, 이 필기도구가 평범한 필기도구는 또 안 되고 토플에서만 요구하는 게 따로 있다. 자세한 건 뒤에 서술하겠다.
컴퓨터에 깔려있는 프로그램 때문에 시험을 아예 못 칠 수도 있다. 감독관이 내 컴퓨터에 원격으로 접속해서 내 컴퓨터에 뭐가 깔려있는지 검사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이 때 단 하나라도 허용되지 않는 프로그램이 깔려 있으면 그 컴퓨터로는 바로 시험을 못 치고 30분 안에 다른 컴퓨터로 다시 접속하거나 시험 날짜를 다시 잡아야 한다. 나의 경우 크롬 원격 데스크톱이 깔려 있는 게 문제였는데, 제거하고 진행해도 되냐고 물어보니까 안 된단다. 무조건 다른 컴퓨터로 접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노트북으로 다시 접속했다. 한 술 더 떠서 이때 노트북을 데스크탑 책상에 올려놓고 했는데 이번엔 데스크탑에 연결된 모니터를 수건으로 덮으라고까지 했다. 데스크탑 PC가 꺼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내 케이스는 그나마 양반이고 어떤 사람은 어떤 프로그램이 문제인지조차 감독관도 파악을 못해 아예 시험을 못 친 사례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휴대폰도 주의해야 한다. 처음에 스마트폰을 감독관에게 보여주고, 감독관이 지시하는 대로 웹캠이 비추는 위치에 폰을 놓아야 한다. 나는 내 뒤에 있는 침대에 놓았다. 시험 시작한 후에는 폰 건드리면 순간 바로 부정행위로 나락간다. 내가 시험 친 시기에는 듣기 끝나고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화장실은 말 없이 다녀와도 괜찮지만 폰 만지면 바로 끝장이다. 실제로 쉬는 시간에 무의식적으로 폰 만졌다가 바로 부정행위 처리된 사례도 있다고 한다. 7월 26일 개정 후에는 쉬는 시간이 없어졌으니 별로 신경 쓸 거리는 아니다. 그리고 시험치는 중에는 계속 감독관이랑 연결된 상태로 웹캠을 보여줘야 한다.
앞서 언급한 필기도구도 기준이 굉장히 깐깐하다. 문제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쉽게 지울 수 있는 화이트보드 + 보드 마카 조합이나, 클리어파일에 흰 종이를 끼우고 비닐 위에다가 마카로 작성 하는 괴상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 나는 그냥 A4 크기의 작은 화이트보드랑 보드마카를 홈에디션을 위해 주문해서 추가 지출이 발생했다. 그리고 시험 끝나면 필기한 내용을 모두 지워서 감독관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시험을 무사히 마무리했다고 끝이 아니다. 높은 확률로, 성적이 늦게 나온다. 나는 결국 교환학생 지원 시기가 끝날 때까지 성적이 안나오는 바람에 미국 학교는 지원을 못 했다. 어차피 일본 가고싶었으니까 ‘오히려 좋아’지만, 아빠한테 한 소리 들었다… 토플 홈페이지에는 홈 에디션이나 시험장에서 치르나 4-8일 안에 성적이 나온다고 나와 있다. 이 말을 절대 믿으면 안 된다. 나도 이 말을 철썩같이 믿고 교환학생 지원 마감이 7월 11일이라 일부러 7월 3일에 시험을 쳤건만, 낭패 봤다. 나는 정확히 11일 후인 7월 14일에 성적이 나왔고, 이것도 알고보면 그나마 홈 에디션 치고 빠른 편이다. 재수 없으면 수 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시험 치고 며칠 있다가 점수 창에 들어가 보면 “Tested - Scores on Hold.” 라고 나와 있고 점수는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면 부정행위로 보일 수도 있는 행위가 의심되어 관리자 리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게 떠버리면 8일 안에 점수 나오는 건 사요나라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되는 경우가 굉장히 잦다. 레딧 같은 데 보면 전세계 공통으로 이런 현상이 꽤 발생하는것 같다. 부정행위 일절 안 하고 감독관 지시 철저히 따른 나도 영문도 모른 채 이게 떠버려서 점수 나오는게 늦어졌다. 그렇다고 시험장에서 치면 정확히 8일 안에 나오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토플은 최대한 점수 제출 시기가 임박하기 전에 여유롭게 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홈 에디션은 상술한 부정행위 이슈때문에 늦게 나올 확률이 훨씬 높고, 리뷰에서 괜한 트집 잡히면 아예 점수가 취소될 위험도 있다. 점수 취소되면 그냥 220달러 날라가고 시험 다시 쳐야 된다고 보면 된다. 인터넷에서 취소된 사례를 봤는데, 힘겹게 본사에 메일이나 전화로 항의한다고 해도 절대 안 들어 준다. “그래서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꼬우면 재응시하든가 아이엘츠 보든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스탠스로 나온다. 부정행위 일절 안했는데도 ETS측에서 일방적으로 점수 취소해버리면 뭐 응시자 입장에선 국제 소송을 걸지 않는 한 손 쓸 도리가 없다. 결국 몇 개월동안 애태우다가 물거품 엔딩이다. 홈 에디션 쳤다가 진짜 재수 없으면 이 꼴이 날 수 있다는 거다. 각자 집 환경이 다르고 감독관도 다르게 배정되니 홈 에디션을 치고도 무사할지 않을지는 결국 운에 달린 문제다. 그나마 11일만에라도 점수 받은 나는 운이 아주 좋은 케이스인 것이다.
공부법
나는 일주일동안 시험 유형을 파악하고 시험에 익숙해지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동안 치렀던 영어 시험에서 없었던 유형, Speaking과 Writing만을 공부 했다. Reading과 Listening은 유형을 파악하기 위해 시험 문제를 풀어본 것 말고는 따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연습 문제의 경우 공식 사이트에서도 무료 모의고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 있는 것만 풀어도 유형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구글링하면 따거들이 유출한 실제 기출문제를 실제 시험 프로그램이랑 유사한 환경에서 풀어볼 수 있는 사이트도 있다. 나는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었기에 이건 풀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ToeflResources 사이트에도 Speaking과 Writing 섹션의 예시 질문들이 있다. 심지어 유튜브에도 모의고사가 많이 올라와 있다. 마음만 먹으면 돈 한 푼 안쓰고도 문제를 많이 풀어볼 수 있다.
유형별 공부법
먼저 Reading은, 지문 길이가 아주 길다는 특징이 있고, 문장 난이도는 수능영어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토익보다는 어렵다. 소소한 팁으로는 시험칠 때 처음엔 지문만 보여주는 페이지가 있고 그 다음 페이지가 첫 번째 문제랑 지문이 같이 나오는데 지문만 보여주는 페이지는 바로 넘기고 첫 번째 문제 나오는 페이지로 넘어가서 지문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지문 길이가 길다고 두려워 할 필요 없는게, 문제가 보통 문단 단위의 내용을 물어보기 때문에 문제에 따라 문단 하나하나에만 집중해서 잘 해석하면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전체 내용을 요약하는 문장 순서 배치 문제가 약간 어려운데, 이것도 그냥 이때까지 하나하나 읽어본 문단의 흐름을 대충 떠올려 보면서 배치해 보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풀린다. 그동안 수능, 토익, 대학 전공책 등에서 숱하게 영어 읽기를 접해온 한국인이라면 비교적 익숙할 이 영역에서 점수를 따야 한다.
꺼무위키 읽어 보면 리스닝이 어렵다고 꽤 겁을 주는데, 의외로 리스닝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한텐 토익이 짧게 들려주고 3~4문제 풀어야 하니 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토플 리스닝의 특징은 수능이나 토익 대비 지문 길이가 아주 길고 지문당 문제 수도 많다는 것인데, 길어서 내용 갈피 잡기가 쉽고 문제도 그렇게 깐깐하게 물어보질 않아서 문장 하나하나를 기억할 필요 없이 흐름만 잘 파악하면 쉽게 풀 수 있었다. 필기는 가능하지만 난 필기를 하지 않았다. 필기하는 동안 듣기에 집중할 수 없게 되기에 듣는 도중에 필기하는 건 비추다. 수능 듣기처럼 몇 달러인지 계산하는 것도 일절 나오지 않는다. 꺼무위키에서 문제삼는 말 더듬고 그런 건 그냥 사소한 거라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호흡을 적절히 끊어주는 역할을 해서 내용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느꼈다.
스피킹은 원래부터 한국인의 최대 약점이고, 직접 대화할 상대가 있지 않는 이상 공부로 실력을 늘리기에도 곤란한 영역이다. 나도 이 스피킹 때문에 걱정이 컸다. 그래도 파훼할 길은 있다. 유형이 딱 정해져 있으니 1. 유형 파악하고 2. 템플릿 외우면 된다. 나는 이 사이트를 통해서 도움을 받았고, 여기 소개된 유형과 템플릿을 이 글에 간략히 정리하였다. 그리고 라이팅과 함께 필기가 필요한 영역이다. 필기하는 방법도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면 좋다.
라이팅은 대학 와서 영어 글쓰기를 한 경험이 좀 있다면 스피킹보다는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제한시간도 아주 여유롭다까지는 아니지만 적절히 주어진다. 단 두 번째 문제는 자기 경험을 떠올려서 써야 하는 거라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곤란할 것이다. 이 글에 팁을 적어놨다. 근데 7월 26일 개정 전 기준이라 차이가 다소 있을 수 있으므로 나는 이 사이트를 참조하는 것을 권장한다. 이 사이트에도 잘 설명되어 있는데, 자기 의견을 말하는 글쓰기 유형의 핵심은 예시의 비율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자신의 의견과 근거는 한 두 문장 정도로 간략히 쓰고,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시를 장황하게 이야기 하듯 서술하면 술술 쓰인다. 라이팅에도 물론 템플릿이 있으니 템플릿까지 숙지한다면 라이팅에서 벽은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담
시험 끝나자마자 리딩과 리스닝은 비공식 점수가 바로 나온다. 나는 최종 결과랑 이 비공식 점수가 동일했다. 성적이 나오고 보니, 내 기준으로 상상을 뛰어넘는 고득점을 해서 기분은 아주 좋다. 특히 스피킹은 유형과 템플릿을 외웠어도 긴장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고 마지막 문제에서는 어순도 안 맞는 무지성 단어 나열 수준으로 말을 했는데 꽤 점수를 후하게 준 것 같다. 이 점수를 교환학생에는 못 써먹게 됐으니 아쉬운 대로 대학원 지원할 때 사용할 예정이다.